본문 바로가기

글쓰기/책과 감상

[독후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11

동물의 직업을 읽고 나서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최재천 교수님의 책을 읽어볼까?라는 마음이 생겼다.

이야기의 구성은 목차별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던지고 그에 대한 동물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보다 더 낫거나 인간과 비슷한 동물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동물들을 보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고 비판도 하고 동물들에게 감탄도 하면서 점차 동물들을 사랑하게 되는 책이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요약하고 그 뒤 느꼈던 감정을 적어본다.

138p. 우리도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동물들 중 일부는 신진대사율을 최저로 낮추고 가을 동안 몸속에 비축해 놓은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며 봄까지 버틴다. 곤충들은 휴면을 통해 겨울을 나거나 알인 상태로 겨울을 나기도 한다. 인간도 잠을 잘 때는 신진대사율이 낮아지지만 동면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우리도 스스로 신진대사를 낮출 줄 아는 동물이라면 이 슬프도록 긴 겨울을 그냥 잠이나 자며 보내련만.

* 이 짧은 글의 마지막은 이번 겨울에도 해당되는 듯하다. 북극의 제트기류가 내려오면서 전래없는 추위를 맞은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도 갑자기 추위가 강타하여 도로가 얼기도 했다. 우리도 푹 쉴 수 있는 시기가 필요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바쁘게만 살아온 현대인에게 몇 달 동안 잘 수 있다면... 이전에 읽었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서 갑상샘 저하증에 걸린 엉클 토비가 떠올랐다. 그는 사람의 도움 없이 그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지만 만약 조절이 가능해진다면 인류는 어떤 생활을 영위하게 될까? 잠을 자는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겠다.

 

163p. 기생충이 세상을 지배한다.

박테리아와 세균등의 기생생물의 공격은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모두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염에 대응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암수로 나뉘어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섞여 번식을 한다면 병원균의 공겨을 막아낼 수 있다. 우리의 성과 생존이 기생충에게 달려있다면 가히 그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달팽이는 건조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지만 기생충에 감염되면 매일 같이 바위 위로 기어오른다. 갈매기들의 먹잇감이 되어 갈매기의 뱃속에 들어가야 기생충이 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에 감염된 물고기도 수면위로 올라서 왜가리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 기생충 덕분에 왜가리나 갈매기는 그날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세상에 필요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생충에 감염된 왜가리나 갈매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체수 조절에 기생충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이와 같은 기생충이나 박테리아 같은 기생생물로 인해서 모든 생물은 계속해서 진화해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진화로 호모 사피엔스에서 어떤 인류가 탄생하게 될지 궁금하다.

 

225p. 동물계의 요부, 반딧불이

반딧불이가 내는 불빛은 촛불이나 전구가 발하는 빛과는 달리 차가운 빛으로 루시페린과 산소와 반응하여 생기는 빛으로 열 손실이 없어 전기보다도 효일적인 빛 에너지이다. 열대 지방의 밤바다에 바닷물이 초록색으로 발광하는 것 또한 미세한 조류들이 반딧불이와 같은 방식으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반딧불이들이 저마다 빛을 내며 밤하늘을 노니는 것은 사랑을 나눌 연인을 찾기 위해서 이다. 반딧불이들은 대여섯종이 있어 만일 자기와 같은 종에 속하지 않는 엉뚱한 암컷을 만나 사랑을 나누면 번식을 할 수 없다. 수컷들은 종마다 각기 다른 불빛 무늬를 그리고 암컷들은 풀잎 끝에 앉아있는 수컷이 가까울 때 마음에 들면 은은한 빛을 낸다. 미국 동부에 사는 몇몇 반딧불이 암컷들은 다른 종의 수컷들이 보내는 신호(불빛)를 읽을 줄 알고 그 종의 암컷들 신호를 흉내 내어 다른 종의 수컷을 유혹한다. 그렇게 넘어간 수컷들은 다른 종의 암컷의 먹이가 된다. 포투리스 반딧불이 암컷은 하룻밤에 여러 종의 신호를 흉내 낼 수 있다.

* 정말 깜짝 놀랐다. 반딧불이의 빛은 차갑다는 것은 정말 몰랐던 사실이다. 반딧불이 빛의 온도에 아무런 관심과 의문이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딧불이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면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다른 종의 신호를 흉내 내어 그 종의 수컷을 잡아먹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줄 알았던 것이 사실 동물들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히 놀라웠다. 구미호 설화가 곤충의 세계에서는 실화였다. 일종의 종들의 전쟁일까? 

(산소 없이 빛을 내는 것은 뭐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문득 생겼다.)

 

231p. 언어는 인간만의 특권인가

정찰벌의 춤언어. 벌들은 춤을 상징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한다. 꿀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 8을 옆으로 뉘인 것 같은 꼬리춤 속의 직진춤이 꿀의 방향과 거리를 알려준다. 먹이의 방향과 해의 방향 간의 각도를 측정하여 동료들에게 알려준다. 또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해의 방향을 중력의 방향으로 바꿔 먹이가 해의 방향에서 왼쪽으로 40도 떨어진 곳에 있으면 그들은 중력의 반대방향에서 왼쪽으로 40도 각도를 유지하여 직진춤을 춘다. 춤언어는 그들의 심리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닌 꿀의 위치를 다른 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처음으로 읽어낸 카를 폰 프리슈는 이를 춤언어라 일컬었다.

나(책의 저자)는 요사이 까치들이 무슨 말을 하고 사는지 연구하고 있다. 물론 까치가 내는 소리에 다른 까치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트름하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마주 지껄이던 까치도 그 소리엔 대꾸하지 않는다. 동물들이라고 독백을 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없다.

* 벌들의 언어를 춤언어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 행위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 그들의 언어는 실로 수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그 위치를 각도로 표현하는 게 사람이 손가락으로 보이는 위치를 가리키는 것보다 정확할 것 같았다. 벌들은 다 수학자일 것 같다. 정찰벌이 춤을 추는 동안 일벌들이 그것을 지켜보는 것을 상상하니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박사님의 까치 연구일화를 읽고 생각난 나의 까치 이야기가 있다. 작년에 대전 정부청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사무실이 갑갑하여 정부청사내의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잔디 공터에 까치들이 모여있던 것을 멀리서 뚫어지게 바라보며 걷고 있었는 데 한 까치가 나를 보며 깍 까악 울어댔다. 뭘 봐? 하며 시비 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길래 나도 지지 않고 싶어서 걸음을 멈췄고 살짝 까치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그 까치는 뒤에 자신의 무리를 믿는 듯 걸어왔다. (그 모습이 마치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양아치 같았다.) 고개를 비틀며 까악(일본 양아치의 아앙? 하는 시비말투가 떠올랐다.) 울고 날개를 퍼득이며 다가오자 나도 몇 걸음 더 다가갔지만 까치는 기억력이 좋고 복수를 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출퇴근 길에 나를 공격할 까 싶어 그냥 내 갈길을 갔다. 동물의 복수심에 쫀 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양아치 까마귀에게 계속 다가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너무 궁금하기도 하다. 까치에게 쪼여졌을 까..ㄷㄷ

 

313p. 여왕벌의 별난 모성애.

벌들의 사회는 거의 전적으로 여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번식기에 맞춰 수벌들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들은 밖에 나가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일도 하지 않는다. 그저 어느 날 장래 여왕벌을 만나 짧은 공중비행 사랑을 나눈 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여왕벌은 일생에 단 한 번만의 혼인비행에서 여러 수컷들과 교미하여 정자를 비축한다. 여왕벌이 알을 낳을 때 정자 주머니로부터 정자를 흘려 알을 수정시키면 그것은 암컷이 되어 장래 일벌이나 여왕벌이 된다. 그러나 여왕벌이 정자주머니를 막아 미수정란을 만들면 그것이 수컷이 된다. 암컷은 모두 염색체가 두 개인 2 배체 개체들이지만 수컷은 반수체 개체가 된다. 이 묘한 성 결정 메커니즘 때문에 벌 사회의 수컷들은 모두 할아버지는 있지만 아버지는 없는 채로 태어난다.

차세대 여왕이 되는 것은 특별한 유전적 성질이 있는 벌이 아니라 단지 일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인지는 몰라도 누이동생들 중 몇을 선택하여 여왕벌로 기를 뿐이다. 어머니 여왕벌은 이런 대접을 받는 여왕벌 애벌레들을 애써 찾아다닌다. 애절한 소리를 내며 이 소리에 응답하는 애벌레를 찾으면 방문을 찢고 그 딸을 물어 죽인다. 이처럼 시기심에 불타는 여왕벌과 힘겹게 몰래 길러낸 동생들을 어느 날 혼인 비행을 위해 날려 보낸다.

혼인비행을 무사히 마친 차기 여왕벌이 군락으로 돌아오면 어머니 여왕벌의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차기 여왕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일벌의 절반정도를 챙겨준 뒤 집을 나선다.

* 작가님은 이를 극진한 모성애로 보았지만 로판 인터넷 소설을 많이 본 나는 독재 권력의 어머니 여왕벌이 쿠데타(여왕벌 입장에서)를 막기 위해 딸을 죽이고 혁명을 꿈꾸는 일벌들이 자신의 새로운 왕을 몰래 길러낸다. 이렇게 새로운 여왕이 성공적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 여왕벌은 자리를 내주게 된다. 애벌레일 때만 죽이고 다 컸을 때는 싸움 한번 없이 싹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여왕을 여왕으로 대했기 때문일까. 

문득 궁금한 것은 이렇게 차기 여왕벌을 길러낸 일벌들은 후에 어떤 이득을 얻게 되는 걸까? 혹시 어머니 여왕벌에게 핍박을 받았을까?

수벌과 암벌의 염색체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인간의 남녀 염색체는 xy와 xx인데 암벌은 xy이고 수벌은 x만 있는 셈이다. 벌들은 바이러스 같은 균을 이겨내는 진화 과정이 인간보다 한 발자국 정도 뒤쳐진 것 같다.

 


 

책은 상당히 다정하게 적혀있다. 현실에 대해 한탄하기도 하면서 동물의 생태계를 인간 사회에 빗대어서 설명하였는 데 이게 또 놀랍다. 바람을 피우는 새도 있는 반면 마음이 맞는 새와 평생을 함께 하는 새도 있다. 아버지만 자식을 키우는 생물도 있고 동성애인 동물들도 있다. 이렇게 보니 인간 사회는 단순히 동물의 사회를 한 곳에 뭉쳐놓은 것 같다.

내가 위에 독후감이랍시고 적은 책 내용들은 아주아주 간단하게 요약해서 적었기에 작가님의 감성이 녹여있지 않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이 섞여있어 실로 재미있었다. 따뜻한 밤에 머리맡에서 잔잔히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