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왜곡된 실험과 이야기로 인해 인간은 악하다고 바라보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더 현실적이고 우리가 인간을 선하다고 믿을수록 플라세보효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잘 알려진 실험의 실체나 전쟁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 파리대왕 이야기 : 태평양 무인도에 추락한 여객기에 타고있던 영국학생들이 민주주의체계를 만들었으나 공포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게 된 이야기, 하지만 누군가가 지은 이야기이다.
- 실화 아타섬에 발견된 소년들 : 파리대왕처럼 이성을 잃지 않고 그들은 위기의 순간에 더더욱 집중력을 발휘하고 서로를 도왔다.
- 사격을 거부하는 병사들 : 유럽전선에서 군인들 중 15~25퍼센트만 총을 쐈다는 이야기. 총을 쏘지 않은 사람들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인 저항감을 가지고 있어 주저했다는 것이다.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스탠리 밀그램과 전기충격 실험, 캐서린 제노비스 실험 : 이 실험들 모두, 실험자의 개입이 있었기에 극적인 결과가 나왔고 온전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험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알려지기를 일부의 진실만 감추면 마치 인간은 위기의 상황이나 주어진 역할에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 사실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는 미디어나 책을 통해 보고 듣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것을 믿을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선하다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서로를 돕는다. 하지만 누군가만 혜택을 받고 있을 때는 그 누군가를 배제시키기도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적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들에 대한 공격성이 강해지고 공감은 저해된다고 한다. 그래서 총이나 대포, 미사일 같은 원거리 무기가 발전이 된 것이다. 실제 적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느낄 것이다.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이고 저 위의 누군가의 명령으로 전쟁터에 나온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 나는 이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느낀 적이 있다. 영화 시사회나 콘서트에서 선망하던 연예인을 실제로 봤을 때, 미디어 속에서 비치던 후광은 사라지고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나랑 같은 사람. 그 순간 환상은 깨지고 그저 한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환상을 좋아했던 것이다. 이처럼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 동질감과 공감이 생기게 된다.
=> 위 이야기는 책의 일부일 뿐이지만 대체적으로 서양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의 이야기의 진실은 또 다를지 확신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선하다는 것을 느낀 뉴스가 있다.
2023.02.** 언제 나온 뉴스인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다. 다만 우리나라에 가스비와 전기세가 급격하게 올랐을 때,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저소득층 중 상당수가 이를 몰라서 놓쳤다고 하는 데, 한 인터뷰에서는 일부러 신청을 안 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더 취약한 계층을 위해서.. 그 뉴스를 다시 찾아보려고 하니 못 찾겠다. 그냥 내 상상이었을 까? 내가 만나본 부유한 계층은 이런 혜택을 너무도 잘 사용한다. 간단한 쇼핑몰 할인 혜택이나 세금 혜택, 연말정산에서 어떻게 하면 내 돈을 지킬 수 있을지 노력한다. 탈세나 주소지 변경등으로 저소득계층에 들어가게 조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혜택이 있는 데,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 살고자 하는 이 마음들이 세상을 유지하는 것 같다. 모두가 이기적이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 나쁜 프레임을 씌우는 것. 인간이 사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게 된 출발점.
1. 종교 : 종교의 중심 교리는 인간이 죄의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
=> 나는 20살 이전까지 기독교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신을 믿지 않는다. 존재하다 안 하다가 아닌 그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자 한다. 내가 기독교에 다니면서 나는 기도를 할 때, 항상 죄송해야 했고 죄인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는 소원을 이루어 달라며 빌겠지만 나는 다짜고짜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사람은 못되었다. 성경의 역사에서 인간은 죄를 사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매번 죄를 고해야 하고 사죄해야 했다.
나는 기도하면서 목사의 말을 들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기도에서 죄를 고하고 사죄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사과해야 할 사람은 신이 아닌, 내 주변의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하는 것은 어렵고 기도로 듣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것은 너무나 쉽구나. 사과는 원래 어려운 것인데 이를 너무 쉽게 포장해 버려 사람들은 쉽게 용서받은 사람이 되네" 비겁하다.
또 성경을 읽거나 목사가 교리를 설명할 때, 나는 왜요? 신이 인간적이네요! 라며 훼방을 놓은 적이 있다. 다들 내가 좀 특이한 사람이라고 포장했지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성경은 지극히 소설 같았다. 신은 감성적인 인간 같았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게 싫었다. 주말에 잠이나 자고 싶었다. 억지로 다닌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그 일원이 되었을 때의 감정과 이야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2. 뉴스 : 평범하지 않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사람의 눈길을 끈다. 이런 미디어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개인이 세상을 개선하는 데 무력하다"라고 생각하여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 나심 탈레브는 말한다. 우리는 뉴스에 노출되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이성적이지 못하다.
3. 문명 : 문명이 생기면서 땅에 줄 하나 긋고 내 것과 네 것이 나뉘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낼수록 자신의 몫은 더 커진다. 사실 문명의 진화 전체를 자신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론을 지속적으로 고안해 낸 통치자들의 역사로 볼 수 있다.
(323p, 329p ~ 332p)
=> 우리 문명은 통치자, 권력자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을 이용하기에 충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뉴스를 조작하고 법을 개정하여 원하지도 않는 법과 이야기에 노출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단순히 국민의 대리인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하여 나라를 돌아가게 만드는 동안 국가라는 배의 방향키를 잡게 해 준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지... 그 자리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을 우리는 계속 주시하고 있다.
4. 권력자 : 권력자들은 자신이 이기적인 만큼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군주론이라는 책처럼 행동한다면 금방 무리에서 쫓겨날 것이다. 캘트너 교수는 캠프에서 권좌에 오른 사람은 가장 친절하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권력은 타인에게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마취제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공감의 핵심적인 정신적 과정인 미러링을 방해한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권력자들이 반대의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 처럼 대하면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다고 느낄 것을 이용한다. 권력자들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뻔뻔함이다.
(309p, 315p ~ 318p)
=>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차가운 것같다. 또 현대문명은 자본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캠프처럼 평등한 사회에서 배출된 리더가 많지 않다.
긍정적인 것을 믿어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플라세보 효과라면 부정적인 것을 믿어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노시보 효과라고 한다.
★ 선으로 위장된 악을 따르다.
테러리스트나 적을 봤을 때 왜 그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내걸어서 이 행위가 그들을 위한 행위라고 포장하게 되면 공격을 망설이던 사람들이 결국 행동하게 된다는 것.
(243p, 281p, 293p)
=>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는 스스로 선하다고 만들며, 자기 의심을 하면서 스스로를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 순응의 학습과 저항의 연습
(249p ~ 250p)
선으로 위장된 악에 학습되어 왔지만 우리는 저항을 연습할 수 있다. 홀랜더는 "밀그램의 영웅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의심스러운 권위에 저항하는 역량이며, 이 역량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믿고 싶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349p, 353p ~ 359p)
=> 신뢰도 전염된다. 저항도 전염된다. 이 책갈피는 추천하고 싶은 부분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이 함축된 것 같은 느낌이며, 특히 우리나라 시민들에게 필요한 이야기 같다. 어서 빨리 겨울이 지나갔으면 한다. 그 과정이 뜨거울지라도.
가해자에 대한 구제
(447p ~ 448p)
=> 반감을 가지게 된다. 피해자들의 대한 구제는 가해자들의 대한 구제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처럼 피해자에게 새겨진 상처는 쉽게 채워질 수 없다. 일단 책갈피는 적어두지만 여전히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책을 읽은 것은 12월인데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다.
최근이다. 2월 11일에서 12일 넘어가는 자정즈음. 고향에서 친구들과 놀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1시까지 인 줄 알았던 지하철은 신도림역에서 더 이상 운행하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의 운행시간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신도림역에서 당황하다가 버스는 끊기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버스를 타기 위해서 지하철 출구 쪽으로 가려고 했다. 고향의 버스는 이미 끊겼을 시간이어서 상당히 불안했다. 여차하면 걸어서 집까지 가야 했다.
그때 저 멀리 다른 출구 앞에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엄마를 부르면서 처절하게..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주변에는 나 말고 아이를 지켜보던 사람 여럿이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망설이고 있었다. 모두들 다른 사람이 도와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망설임이었다. 나처럼.
다행히 내가 가려던 출구 쪽에서 형광 조끼와 남색 조끼를 입은 사람 두 명이 나타났다. "어디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형광 조끼의 남성이 남색 조끼의 남성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그들이 아이를 찾아 줄 거야 라는 믿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달려갔다. 정말 아이를 찾았고 부모님께 인계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 이후 후회를 많이 했다. 막차 버스를 타며 내가 안심이 되자 아이 생각이 났다. 낯선 서울에서 느끼던 내 불안함과 엄마를 잃은 아이의 불안함을 뒤늦게 생각했다.
나의 치졸함에 자책하고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그날은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지하철 민원에 그 일이 어떻게 풀렸는지 물어보고 기부를 한 뒤에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기부를 한다고 한들 나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기부마저도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무수히 많은 상상을 했다. 아이가 왜 그 밤에 혼자 있었을지, 혹시 역무원이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내가 만약 그 아이에게 다가갔더라면...
이 일을 겪고 나니,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나 자신이 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한 조건중 하나가 선명해졌다. 좀 더 앞 뒤 가리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 이렇게 어려운 숙제가 생겼다.
비겁한 생각 하나는 나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과연 행동했을까? 그래도 이번의 경험이 다른 날 망설임에 멈춘 발걸음을 아이에게로 가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길 바란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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