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파친코'를 읽고 - 8
드디어 구매했다! 번역인 줄도 모를 정도로 한국 정서를 정말 잘 표현했다. 원글에서는 어떻게 사투리를 표현했을지 궁금할 정도이다. 파친코 1은 어르신들의 잔소리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파친고 2는 소속되지 못한 일본인들의 이야기였다.
목차는 고향, 모국, 파친코인데 이 세 가지는 사실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내가 느낀 고향의 의미는 그리움, 돌아가야할 곳이라면 모국은 내가 소속된 곳, 나의 주체가 되는 장소이다. 파친코는 마냥 도박장인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의미가 다르다. 일본이 모국이지만 일본에 소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에 머무는 곳이다.
이 책에는 물흐르듯 여러 가족이 나온다. 이 세대의 흐름과 세상의 흐름이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되어서 읽는 데, 지루함이 없었다. 훈이와 양진의 세대부터 솔로몬의 세대까지, 4대로 장장 1910년 ~ 1989년 기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대 분위기가 잘 담겨 있어서 그 시대의 풍경이나 삶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4세대의 이야기가 담긴 만큼 파친코 1과 2의 감상이 달랐다.
파친코 1,
(조선) 하숙집을 운영하는 훈이 가족과 시대 배경을 그린다. 중매쟁이라는 아줌마가 훈이와 양진을 이어주고 선자를 낳는다. 양진은 선자를 낳기까지 많이 유산을 했었고 다행히 아무런 장애를 가지지 않고 건강하게 선자가 태어났다. 훈이가 윗입술이 갈라지고(그 시대에는 흔한 질병으로 구순구개열이라고 한다) 한쪽 발이 뒤틀린 사람이었는데 아이에게도 같은 병이 옮길까 걱정했었다. 훈이는 멋진 아버지상으로 그려진다. 양진에게도 다정하게 대하며 특히 딸인 선자를 보석처럼 아꼈다. 그 때문일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양진과 선자의 마음에 훈이 아버지가 남아 그리워하는 게 느껴졌다.
훈이가 이른 나이에 죽고 양진과 선자가 하숙집을 운영한다. 하숙인들을 위해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가는 등, 그 시대 풍경이 그려졌다. 뱃일을 하는 하숙인들이 중국과 일본 욕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웃프다. 석탄 배달부와 하숙집에서 식모살이는 하는 두 자매들, 여기에는 일하는 사람만 나온다.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삶에서 허용되지 않는 시대였다. 어쩐지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선자가 고한수와 사랑에 빠지고 혼인전에 아이를 가지게 되지만 고한수가 유부남인 것을 알고 선자는 고한수와 이별한다. 마침 하숙집에서 잠시 머물던 백 이삭이라는 목사가 사정을 이해하고 선자와 결혼을 하며 미혼모라는 낙인은 면한다. 백이삭이 하숙을 하는 동안 하숙집에 목숨에 빚을 지었고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여 결정하였다. 백이삭은 형이 있는 일본으로 가서 목사로서 전도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선자와 이삭은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일본) 일본의 이카이노라는 지역은 조선인들이 사는 곳이었고 많은 차별을 받는 곳이었다. 돈이 있어도 좋은 집을 보여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다. 이 작은 집에서 이삭의 형인 요셉 부부와 이삭 부부가 함께 살게 된다. 또 선자가 고한수와의 아이인 노아를 낳고 이삭과의 아이인 모세를 낳게 되면서 가족이 불어나게 된다. 이삭은 종교적인 사건으로 인해 2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출소한 뒤에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선자와 경희가 불어난 식구의 밥벌이와 교육을 위해 쓰루하시역에서 김치를 팔려고 한다. 가장 처음, 수레를 끌고 역에나와 '김치 사세요!'라고 외치는 선자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였다면 일찍이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고한수는 선자의 주변을 맴돌며 몰래 도움을 주었다. 야쿠자인 그는 정보와 돈이 많았고 그의 존재는 선자의 가족에서 약간의 치트키 역할인 것 같다. 도쿄 대공습에서 선자의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다친 요셉을 가족들에게 데려다주고 조선에 있던 양진을 데려다준다. 또 자신의 아들인 노아를 위해 책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고한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선자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항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식모 아이들은 중국에서 일자리가 있다 하여 갔다고 하는데.. 책에서 제대로 나오진 않았지만 어디에 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시대였다. 배우는 것보다 일을 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하기보다는 무엇이든 해야 하는 시대. 일을 하는 시대였다.
차별은 눈 녹듯 녹아있어서, 너무도 당연하다 느낄 만큼 잔존해 있다. 사실 스치는 이야기마저 차별이 담겨있다. 이러한 외로움은 가족들이 더 뭉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수레를 끌며 박스나 알루미늄 캔 등을 모으거나 길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노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런 삶에 대한 고군분투가 너무도 대단했다. 나 자신과 비교하면서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자신감을 잃었다. 난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다. 위태로운 시대의 변화가 느껴지고 나 또한 멍 때릴 시간이 없는 데, 자꾸만 지친다. 나는 이민진 작가님이 생각하는 한국인이 아닌 것 같다.
파친코 2,
공습이 끝난 후, 오사카에 집을 마련하고 다시 일본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노아는 학교에 다니고 모세는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픈 요셉을 대신해서 선자와 경희, 양진까지 일을 하게 된다. 노아 또한 학교에 다니면서 회계일을 하기도 한다. 모세는 학교에서 따돌림에 대응을 하면서 사건사고를 많이 일으키는데, 결국 파친코 사장의 제안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파친코에서 일을 하게 된다.
노아는 명문대학교인 와세다대학교에 합격하게 되고 선자는 또.. 어쩔 수 없이 고한수에게 노아의 학비, 자취 비용 등을 도움받게 된다. 고한수의 도움을 안 받으려고 했지만 늘 그렇듯 자식을 위해서 자존심을 굽혔다. 노아는 일본인인 아키코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아키코는 노아를 그저 조선인으로만 봐서 상처를 받고 또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서 노아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그렇게 떠난 노아는 나가노에서 파친코에서 일을 하게 된다.
모세가 파친코로 벌어들인 돈으로 선자의 가족들은 어느 정도 안정된 집에서 살게 된다. 모세는 자신의 이름으로 파친고 가게를 열게 되고 유미라는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솔로몬을 낳는다. (이 책에서는 탄생과 죽음이 빠르게 일어난다.) 유미는 음주 운전사에게서 솔로몬을 지키고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솔로몬은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는다. 3년에 한 번씩 등록증을 갱신해야 하는 것만 빼면.. 외국에서 대학교를 나오고 일본에서 외국은행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 직장에서 솔로몬은 해고를 당하게 된다. 솔로몬이 조선인이라서가 아니라 그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이용해서 자신보다 유능한 직원의 싹을 자른 것으로 나는 해석했다. 그리고 솔로몬은 아버지처럼 파친코에서 일을 하게 된다.
늘 모세나 솔로몬은 말한다. 착한 일본인들도 많다고... 하지만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차별과 시선들은 뽑지 못했다.
다들 결국 돌아간 곳은 파친코였다.
노아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만 자랐다. 조선인으로만 보는 차별의 시선과 일본에 소속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괴리감. 자신에게 야쿠자의 피가 흐른다는 것에서 노아는 버티지 못한 것 같다. 나가노에서는 일본인으로서 살면서 가정을 꾸렸지만 늘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말 몇 년 만에 선자를 만났을 때, 끝내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가장 처음 노아의 자살을 읽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정말 어렴풋하게 이해하고 있다.
차별은 응집력을 만든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일본인들끼리의 응집력, 유대감을 가지는 것 같다. 그래서 뿌리 뽑지 않는 걸까. 솔로몬이 3년에 한 번 갱신하는 등록증이 없어져야 '조선인'이라는 타이틀이 없어질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그들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느껴진다. 핏줄보다 중요한 건 자란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은 4대의 이야기를 단 두 권에 담기 때문에 전개가 빠르다. 독자는 빠르게 인물에게 호감을 얻고 흥미를 가지지만 또 빠르게 죽음을 맞이해서 허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훈이, 이삭과 요셉이라는 가족의 기둥이 꽤 빠르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선자와 경희가 수레를 끌게 된다. 3대부터 자손들이 파친코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전체적인 가족이 안정감을 얻게 된다. 이들은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일을 한다. 나도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걸까? 하며 요즘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모세가 유미가 죽고 난 몇 년 뒤에 에쓰코라는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것과 에쓰코의 전남편과의 자녀인 하나 누나의 이야기와 모세의 친구인 하루키의 동성애 관련 이야기들과 같이 다양한 소수에 대한 이야기들도 담겨있다.]
작가님이 작성하신 파친코에 대한 표현이 아주 재미있다.
그들은 모두 가능성과 두려움, 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번다.
...
파친코는 바보 같은 게임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파친코 그 자체는 바보 같은 게임이지만 파친코에 온 사람들은 거친 인생에서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얻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