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책과 감상

[변신] 을 읽고

빈카(Vinca) 2021. 8. 8. 13:50

2020.08.13

하필

 

왜 하필 그레고르는 변신한 걸까?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먹먹함. 
‘함께’라는 것을 알고 나서의 ‘소외’는 죽는 것보다 무서울 것이다. 

그레고르는 가정에 헌신적이었다. 빛에 치이면서도 누이의 음악 학교를 보내줄 생각을 하며, 꽤 팍팍한 상사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변신한 순간 지배인은 듣지 못한 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 말하며, 가장이라는 짐이 스스로 문을 열게 했다. 본인의 변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반응, 혼란을 줄지 생각하지 못한 채. 
그는 아마 본인의 모습을 보지 못했겠지만 잠에서 깨어나고서 침대 위 내면의 대화에서부터 지배인이 오기 전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 생각보다 일찍 침착해졌다. 또 잠에서 일어나고서 바로 목소리가 변조된 건 아닌 것 같았다. 잠시지만 가족과 대화가 통했다. 
소통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단순히 외관이 징그러워서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외관이 다른 생물과 사는 방법을 안다. 예를 들어 강아지와 인간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왔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내면이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우리는 충분히 아는 데, 잠자 가족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징그러운 외모가 도전조차 허용하지 않은 건가... 그의 내면이 살아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레고르는 폭력적일 것 같은 외모로 변신했지만 아마 가족들은 몇 달 살아오면서 알았을 것 같다. 전현 폭력을 휘두르지 않은 것. 그것만으로는 안되었을 까.. 왜 혼자 둔 것일가.. 왜 하필 그레고르가 변신한 걸까... 

그레고르가 변신하고 나서 대부분이 도망치고 가족만이 남았다. 언젠가는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홀로 방에 소외되어있었다. 그레고르를 제외하고 방에 가두어 소곤소곤 부엌에서 거실에서 밀담을 나눴다. 누이가 밥과 청소를 하는 것 외에는 철저히 혼자였다. 방안의 가구를 뺄 때, 그레고르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것 같았다. 그가 그나마 원했던, 가정에 헌신한 삶을 살아오면서 가졌던 어떤 여인의 사진마저도. 

그레고르는 왜 사과로 맞아야 했을 까. 그가 잘못한 것은 무엇일 까? 또 왜 하필 사과를 던진 걸까.. 그레고르의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죽음을 앞당겼다.

그레고르의 그 끈질긴 생명은 몇 달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이 다가오자 살짝은 이성을 잃은 듯, 소외당한 삶에서 벗어나고픈 듯, 바이올린 소리에 홀린 듯 누이를 자신의 방에 가둬 자신이 가정을 사랑했고 누이를 위해 음악 학교 입학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말하려 했다. 들리지도 않았지만, 또 누이를 가두어 바이올린을 켜게 만들려는 생각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누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생각한 말이지만 과연 생각한 것일까? 내면마저 벌레로 변신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잠자 가족의 삶은 두 번 변한다. 그레고르에게 의지하는 삶, 그레고르가 변신하고 나서의 삶, 그레고르가 죽고난 다음의 삶. (어쩌면 그레고르의 변신은 가족의 독립을 촉구하는 것이었을까?)

삽화에서 작가의 얼굴을 작품속 인물(?)에 투영하는 것이 기묘하다.

[그레고르에게 의지하는 삶] 

평범했다. 그레고르가 벌어온 돈으로 가족들은 살고 있었다. 누이는 아직 어렸고 어머니는 몸이 조금 안 좋았으며, 아버지는 은퇴 후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레고르가 변신하고 나서의 삶] 

가장이 사라지니 모든 가족이 각자 일을 찾아 나섰다. 원하던 일이었든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든. 아버지는 새 직업을 갖고 난 후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레고르에게 약간은 사람대접을 해주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갔다. 
늙은 하녀가 온 후 그레고르는 그저 벌레 취급을 당했다. 잠자 씨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죽이지는 못했지만 마냥 그가 죽기를 바란 것 같았다. 

[그레고르가 죽고 나서의 삶] 

하지만 그레고르는 그레고르의 내면으로 죽었다.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그레고르의 죽음은 가족에게 활력을 주었고 새 삶을 얻었다. 
그나마 가족이라는 예의를 지켰다고 다독이며... 

가족들도 대단했다. 그레고르의 내면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념 하나로 오래 버텨왔다. 그를 숨기고 보지도 않고 존재하게 했다. 
가족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레고르의 가족이라면’이라는 전제로 두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다. 

첫 번째로 그레고르가 벌레에 잡아먹혔다고 합리화한 뒤 죽이거나 신고하는 것 

두 번째로 강아지처럼 말을 하면 알아듣는지 실험을 한 뒤,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변한 그레고르가 이성을 잃어 폭력성을 띄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책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무엇으로 변신했는지 적혀있지 않아도 어떤 벌레로 변한 건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표현되었다.
그레고르의 비참한 변신은 가족으로부터 소외, 소통의 단절을 초래했으며 눈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만약 대화가 통했다면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았을까?) 

작가는 가장으로서의 삶과 그 결말을 말하고 싶은 건지, 외면과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변신은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이렇게 많은 생각과 의문을 남기는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